1916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나 한국의 첫 서양화가이신 고희동 화백을 사사(師事)한 뒤 1941년 동경 동방미술학원을 졸업하고, 동경미술가협회 및 동광회전 등에 참가하기도 했다.
1955년~1966년까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했으며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장, 국전 초대작가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국전에 연 4회(55년~58년) 특선, 대한민국 예술원상, 대한민국문화훈장 등을 수상하며 20회의 개인전(1950년 이후 국내외) 등 열정적인 작품 활동으로 당시대의 미술문화를 위해 공로하였다.
이종무 화백의 작품 세계는 “황토의식에 집약된 미의 순례”라는 압축된 표현처럼 흙에 대한 사랑이 묻어있다. 특히 말년의 그의 작품 세계는 사심없는 노경(老境)의 관조로서 자연을 수용하며 겸허한 심상(心象)의 투영으로서 정일한 자연을 표현하고 있다.
그의 작품세계는 초년기의 사실적인 양식에서 장년기의 추상적인 변모, 그리고 노년에 또다시 구상으로 탈바꿈하는 3번에 걸친 편력을 거듭했다. 1962년부터 71년에 걸치는 추상화 시기를 제외하고는 주로 인물과 풍경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캔버스와 이젤을 짊어지고 한국의 아름다운 산천을 두루 다니는 그의 모습은 그의 마음에 드는 주제를 찾아서 방황하는 순례자, 그것이었다. 그의 인물화는 추운 겨울이나 풍경을 그릴 수 없는 여건일 때 실내에서 그린 작품들이다. 만년에 그가 몰두한 것은 1975년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계속 집착하고 있던 '산'시리즈이다.
산이 지니고 있는 무한한 신비와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노년기의 예술혼을 불사르던 지난 2003년 5월 26일, 미수전(88세를 기념하는 전시) 준비 중, 화집 논의로 서울 출판사에 다녀오다 미술관 앞 39번 도로 건널목에서 교통사고로 별세하였다.